취미(낚시.등산)/등산

북한산(2012.07.02) 백운대탐방지원센터(도선사) ~ 묵한산성탐방지원센터(구파발)

반딧불이(죽장) 2012. 7. 2. 21:11

6월 30일 장마비가 내려 7월 1일은 근무라서 산행할수가 없고

7월 2일 가시권이 좋을것 같아 06시 원룸을 출발하여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수유리 4번 (3번 공사중)  출구로 나와

중앙버스 차선에서 120번 시내버스를 환승하여  우이동 버스종점에 도착하니 07시 08분

 

첫 북한산 산행이라 정보가 없어서 마침 대기한 택시를 이용 할려니 

4명 되어야 출발한다면서 옆 도선사 버스를 이용하라고 하여

07시 10분 출발하는 도선사 버스로 들머리  도선사 주차장까지는 편히 왔지만~~~

(도선사 버스는 05시 50분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첫차가 출발 한다고 합니다.)

 

북한산 산행코스는 100코스 이상이라고  하지만

첫 나들이 산행코스는

 

 07시20분  백운대탐방지원센터(도선사 주차장) 출발하여 ∼ 하루재 ∼인수대피소(07시54분) ∼

백운대피소(08시18분) ∼  위문(08시29분) ∼ 백운대 정상 (08시40분)  ∼

 보리사(10시29분)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10시55분)

 

산행거리는 백운대탐방지원센터 ∼ 백운대  2.1km

백운대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4.1km 

 

총 산행거리 6.2km

 

▼ 07시20분 도선사 주차장 

 

 

 

 

 

▼ 도선사 일주문

처음 계획은 백운대에서 원점 회귀 할 계획으로 하산 하면서

도선사 들려 본다는것이~~~

 

 

▼ 백운대탐방지원센터

 

 

 

 

 

 

 

 

▼ 관악산에도 참나무 시들음병으로 방재를 하었던데~~~

북한산도 예외가 아니네요.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

 

 

▼ 인수봉

 

 

 

 

 

 

 

 

 

 

 

 

 

 

▼ 백운대 정상에서 기념 샷

 

 

 

백운대 정상 바위에 세겨져 있는 북한산 3.1 운동 암각문이다

 

敬天愛人(경천애인), 백운대 정상에 있는 음각글씨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 정상에 3.1 운동 암각문이다.

글씨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 보호대를 만들어 세워 놓고 있다.

 

독립운동가인 정재용선생이 3.1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긴 암각문이다.

평평한 바위에 경천애인이라는 네 글자를 세기고 그 안에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 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 1일 탑동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만세를 도창했다는 글이 쓰여있다

 

 

▼ 백운대 정상에서 본 인수봉

 

 

▼ 멀리 국녕사 도 보이는데~~~~

서울지역은 정말 스모그 때문에 깨끗한 조망을 볼수가 있는날이 몇일이나 될지~~~

비온 후 산행을 잡을려고 해도 시간이 맞지 않고~~~

 

 

▼ 백운대에서 본 원효봉능선과 원효봉

 

 

 

 

 

 

 

 

 

▼ 만경대 (왼쪽바위)

 

 

 

▼ 오리바위

 

 

 

 

 

▼ 위문 북한산성에서 본 백운대

 

 

▼ 위문에서 하산 하면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3.7km 가르키네요.

 

 

▼  노적봉

 

 

▼ 보리사

 

 

 

 

 

 

 

 

 

 

 

 

 

 

 

▼ 하산하여 34번 버스를 기다리면서 ~~~

 

 

자료펌 : 문화유산

 

삼각산은 인수봉·백운대·만경대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三) 개의 뿔(角)과 같이 생겨 ‘세뿔’로 불리면서 점차

 ‘삼각산(三角山)’이라 하였다.

“백제, 고려, 조선의 개국을 암시했던 삼각산의 세 봉우리”

삼각산은 다양한 건국 설화를 가지고 있다.

백제 건국 당시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 온조와 비류가 졸본을 떠나

지금의 서울인 한산에 이르러 새로운 도읍지를 찾기 위해 부아악에 올랐다고 한다.

부아악은 ‘부아(화)가 치밀어 솟아 오른 곳’ 또는 ‘불끈 솟아 오른 곳’이라는 뜻인데, 인수봉을 말한다.

군사요충지였던 삼각산은 본디 백제의 땅이었지만 고구려 장수왕에게 빼앗겼고,

나중에 신라가 차지하며 비봉에 신라 영역임을 표시하는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지고 제가 지내졌다.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에 능한 도선국사가 신라의 국운이 다했음을 예견하고,

새 나라를 갈망하기 위한 기도처로 삼각산에 도선암이란 암자를 짓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했다.

 기도에 감응이 있어 남쪽 봉우리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니 송악(개성)에 왕기가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송악이 후에 새로운 도읍지가 될 것을 예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나라를 바라보았다’는 뜻으로 국망봉(國望峰)이라 했는데, 지금은 ‘만경대’라 부른다.

조선 건국 당시에는 무학대사가 계룡산에 새 도읍지를 세울 것을 제의하였지만 신하의 반대로 무산되자,

개국공신 정도전이 삼각산에 올라 남쪽 양지바른 곳에 도읍지를 정할 것을 마음에 두었다고 하는데,

이때 오른 봉우리를 ‘망경대(望京臺)’라고 하였다.


 

상세설명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쥐라기 말의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으로 되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반객 또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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